“진짜?”
“그럼요. 그런데”
“?”
카미야가 슬쩍 마법진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노인을 힐끔 보며 입을 열었다.
“저 노인 분께는 절 시종으로 소개하셨으니깐 일단은 계속 시종으로 있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에에? 설마 아직도 삐쳐있는 거야?”
카미야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설마요. 지금도 아하루님은 저에게 말을 낮추지만, 저는 아하루님께 말을 높여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제와서 다른 사이라면 이상하게 볼 겁니다.”
“음……. 그것도 그렇다. 그럼 지금부터 서로 말을 놓으면 되잖아.”
“그럴 순 없죠. 엄연히 아하루님은 귀족이고 전…….”
“상관없어. 카미야와 나 사이에 신분이 무슨 상관이야? 그러니 앞으로 말 놓기야?”
”그건 나중 일이고, 일단은 제 말대로 해주세요. 괜히 말을 편하게 했다가 어느 순간 버릇대로 튀어나오면 더 이상하게 보이지 않겠어요? 어차피 전 아하루님께 말을 높이는 게 이미 습관이 되어 있으니까요.”
“흐음? 그것도 그러네?”
“그러니까 제 말대로 이곳을 벗어나기 전까진 시종으로 있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러면……”
아하루는 여전히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카미야가 아하루에게 한쪽 눈을 찡끗했다.
“어차피 전 아하루님의 노예가 아닌가요?”
“응? 노예?”
아하루는 카미야의 말을 되묻다 문득 지난밤 일이 떠올랐다. 갑자기 아하루의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그치만, 그건 그러니까……”
아하루의 목소리가 한풀 꺾였다.
“그렇게 해주시는 게 오히려 제 마음이 편하답니다.”
카미야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아하루도 더 이상 자기 고집만 내세울 수 없었다.
“알았어. 그래야 카미야가 편하다면 그렇게 할게”
“저기 아까 그 노인 분께서 오시는 군요”
“응? 아아~. 하렌 할아버지?”
“하렌이요?”
“응. 카미야가 없는 사이 통성명을 했거든. 이름이 하렌이시래.”
둘에게 다가온 하렌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끼어들었다.
“허허, 내 이름이 나온걸 보니 내 얘기를 나누고 있었던 게로군.”
“카미야에게 할아버지 이름을 가르쳐 주었어요”
아하루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하렌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카미야를 바라봤다.
“참, 자네 이름이 카미야라고 했었지?”
“네. 맞습니다.”
“방금 전 들었다시피 하렌이란 늙은이네. 자자,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짐들을 다 챙겼으면 그만 가기로 하지.”
“예.”
“알겠습니다.”
하렌의 말에 아하루와 카미야가 각자 자기 짐을 들었다.
“참”
하렌이 발걸음을 멈추고 둘을 보았다.
“저쪽에 있는 내 짐도 좀 들어주겠나? 나이가 들고 보니 나 혼자 짐을 나르려니 영 쉽지 않아서 말이야.”
“물론이죠. 그런데 어떤 거죠?”
카렌의 부탁에 아하루가 방긋 웃으며 승낙했다. 그러자 하렌이 자신의 짐을 가리켰다. 자그마한 궤짝 두 개였다.
“저걸세. 저리 보여도 만만치는 않을게야.”
아하루와 카미야는 하렌이 가리킨 궤짝을 각기 하나씩 나누어 들었다. 그다지 큰 상자가 아님에도 족히 30kg은 나갈 정도로 무거웠다.
생각 외로 무거운 짐에 아하루가 낑낑대자 하렌이 넉살좋게 웃음을 지었다.
“무겁지? 조금만 수고 해 주게. 대신 내 집에서 단단히 대접함세.”
“기대할게요.”
아하루가 애써 웃으며 힘든 내색을 지웠다.
아하루와 카미야가 짐을 짊어지고 출입 관리소를 나서자 그 앞엔 소담한 짐마차 하나가 준비되어 있었다. 하인으로 보이는 이가 다가와 짐을 받아들곤 익숙한 행동으로 마차에 실었다.
그 사이 하렌이 먼저 마차의 짐칸에 올라가 앉았다.
“이리 올라오게나. 보시다시피 초라한 마차지만.”
“이 정도면 과분하지요”
카미야가 인사치례를 하면서 마차에 올라탔다. 그리곤 손을 내밀어 아하루가 올라오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 모습을 보던 하렌의 눈이 살짝 빛났다 사라졌다.
그들이 자리를 잡자 마차가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출발했다.
“할아버지는 상인이라고 하셨죠?”
아하루의 물음에 하렌은 웃는 듯 마는 듯한 미소로 답했다.
“근데 무슨 일로 룬까지 갔던 거죠?”
“장사꾼에게 달리 무슨 일이 있겠나? 그저 이곳의 물건을 그쪽에 가져다가 팔고, 오는 길에 그쪽 물건을 가져 오는 거지”
아하루는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번엔 카미야가 물었다.
“그런데 짐이 부피에 비해 꽤 무겁더군요.”
“그랬을 걸세. 미스릴이거든.”
아하루와 카미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미스릴이요?”
“어디 전쟁이라도 나려는 겁니까?”
카미야의 말에 아하루가 의아해 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 했다.
노인은 카미야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다는 듯이 허허거렸다.
“전부 우리 것은 아니고 가공해서 되 팔 것들이라네.”
“미스릴을 직접 가공하신단 말씀입니까!”
카미야의 크게 놀라 외쳤다.
그러자 아하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카미야. 그게 그렇게 대단한 일이야?”
“당연히 그렇습니다!
“응? 어째서?”
“미스릴이 같은 무게의 금보다 더 비싸다는 것은 알고 계시죠?”
“그거야 알지. 워낙 고가인 탓에 귀족이나 기사들이 쓰는 검에나, 그것도 아주 소량 밖에 섞지 못한다는 거. 그래서 미스릴이 50% 이상 함유된 검을 보검으로 불린다는 것도. 아! 그렇지. 전설로 내려오는 검들엔 80% 정도 섞여 있을 거라고도 들었어.”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미스릴이란 것이 가공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닙니다. 어지간한 실력이 없으면 망가지기 쉽거든요.”
“그런데?”
“그러니 그 귀한 미스릴을 아무에게나 맡길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없겠죠. 그래서 공식적으로 미스릴을 다룰 수 있을 정도의 실력과 더불어 만약 잘못됐다 하더라도 배상을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자본이 있는, 다시 말해서 한 지방을 넘어 제국 전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유력한 장인 가문에게만 허락됩니다.”
“아!”
“제국에서 정식으로 미스릴 가공을 허락 받은 곳은 모두 네 곳. 남쪽 슈만 지방의 추멘 가문과 중부 도레온의 케롭 가문 그리고 유차레의 아히만 가문. 그리고 챠렌의 듀페리언 가문입니다. 그럼 하렌님은……?”
“허허. 그렇네. 듀페리언이란 성을 쓰지. 하지만 방금전 카미야군의 말처럼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고 그저 남들보다 미스릴을 조금 더 잘 다룰 줄 아는 정도라네.”
하렌이 멋쩍은 듯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나 카미야는 그것이 하렌의 겸양일 뿐 사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제국에서 공식적으로 평민과 귀족에 대한 차별을 없앴다고는 하지만, 실제 귀족에게 저처럼 아무렇지 않게 하대하는 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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