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2일 수요일

[아하루전] R022 2. 여행을 떠나다 (4)




 아닙니다. 초면인데 폐를 끼칠 순 없지요.”
아하루는 노인이 자신에게 말을 낮췄음에도 개의치 않았다. 그런 아하루가 맘에 든 탓일까? 하렌이 재차 권유했다.
허허, 괜찮네. 이래봬도 장사꾼일세. 자고로 장사꾼은 인연을 중히 여기는 법이지. 비록 집이 초라하기 그지없지만, 그래도 여관에서 묵는 것보단 나을 걸세.”
초라하다니요. 쉴 곳을 마련해 주신다니 그럼 사양않고 감사히 머물겠습니다.”
노인은 아하루 옆에 있는 카미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범상치 않은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런데 이분은 뉘신지?”
이쪽은……
인사드리겠습니다. 아하루님의 시종 카미야라고 합니다.”
카미야가 먼저 입을 열었다.
노인은 내심 놀라며 새삼스러운 눈으로 카미야를 다시 쳐다보았다. 놀라기는 아하루도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카미야가 재빨리 아하루에게 눈을 살짝 찡긋해 보였다.
노인은 카미야를 찬찬히 쳐다보더니 아하루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정말로 자네 시종인가?”
, 그게…….”
아하루가 말을 떠듬거리자 노인은 뭔가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여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알겠네.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죄송합니다.”
허허. 죄송할 게 뭐가 있겠나? 그럼 밖에서 보세나.”
감사합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곤 출입 사무소로 들어갔다.
아하루는 잠시 카미야를 보았다.
왜 시종이라 자처했는지 궁금했다.
마법진에 탑승할 때여 어쩔 수 없었지만, 도착한 이상은 굳이 시종으로 자처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카미야의 아무렇지 않은 표정에 차마 물어 볼 수 없었다.
가시죠?”
? …….”
카미야의 재촉에 아하루는 발걸음을 옮겼다.
출입 사무소에서 아하루가 수속을 밟는 동안 카미야는 교환소로 향했다. 그리고 룬에서 받은 종이를 직원에게 내밀었다.
종이에 적힌 액수를 확인하던 직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직원은 종이를 들고 황급히 어디론가 사라졌다. 잠시 후 뚱뚱한 중년의 사나이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리곤 카미야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손님! 지금 당장 이 금액을 전부 지불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제국 경제의 중심인 수도 룬에서야 오가는 거래의 규모가 크다보니 자연 유통되는 금화도 풍부했다. 하지만 지방은 달랐다.
대부분 지방의 경제는 수도 룬에 비해 작았고, 오가는 돈 역시 금화보단 은화 중심이었다. 때문에 은화라면 모를까 금화를 한 곳에 쌓아두는 곳은 많지 않았다.
더욱이 차렌은 제국의 중심에서 한참 벗어난 지방 중에 지방이다. 그런 곳이다 보니 비록 차렌의 중심도시 아카발이라고는 하지만 카미야가 맡긴 금액을 일시에 내줄 수 있을 만큼의 금화를 비축해 놓지 못했던 것이다.
카미야는 대략 사정을 짐작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 어느 정도나 가능하겠는가?”
카미야가 하대로 물었음에도 뚱뚱한 사내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연신 땀을 닦아내며 두 손으로 공손히 작은 주머니를 내밀었다.
금화 200닢 정도는 지금 드릴 수 있지만 나머지는 며칠 더 기다리셔야 합니다.”
알았다.”
카미야가 뚱뚱한 사내가 내민 주머니를 받아 품 안에 챙겼다.
“3일 더 기다리도록 하지. 하지만 그 이내에 도착하지 않는다면 배상금을 물겠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뚱뚱한 사내가 안도하며 말했다.
3일이면 수도 룬에 요청하여 지급할 금화를 수송해 올 수 있었다. 비록 소요경비가 만만치 않게 들겠지만, 이번 교환에 얻을 이익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보통 교환소에 돈을 맡기고 찾을 때, 맡기는 쪽에 2%, 그리고 찾는 쪽에서 2%. 도합 4%의 수수료를 뗀다.
카미야가 맡긴 돈이 얼추 금화 4200 닢이니 수수료만도 무려 금화 168. 그 절반이라 하더라도 무려 금화 84닢이다.
뚱뚱한 사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만져보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액수다. 한 번에 그런 엄청난 실적을 올린다면 다음 승진은 그가 될게 틀림없을 것이다!
뚱뚱한 사내는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얼굴로 다짐했다.
책임지고 3일 안에 찾아 가실 수 있도록 준비해 두겠습니다.”
카미야는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돌렸다.
뚱뚱한 사내가 급히 허리를 굽혀 카미야를 정중히 배웅했다.
카미야가 교환소에서 나오자 누군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 거기 있었구나?”
아하루가 카미야를 발견하곤 그에게 달려왔다.
여기서 뭐해?”
잠깐 볼 일이 있어서요.”
혹시 교환소에서 돈이라도 찾았던 거야?”
그럴 필요 없어. 카미야는 내가 충분히 부담할 수 있다고.”
카미야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그래도 여윳돈이 있으면 좋잖아요.”
하긴 그것도 그러네? 그데 얼마나 찾았어?”
얼마 안 됩니다.”
그래? 그럼 나도 돈 좀 찾아올게. 짐 좀 맡아 줘.”
아하루는 자신의 배낭을 카미야에게 맡기곤 보관소로 들어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나와야 했다.
!”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글쎄, 웬 부자가 왔었나봐. 맡긴 돈만 금화 몇 천 닢이라나? 그 사람이 이곳에 있던 돈을 죄다 긁어갔다지 뭐야. 하지만!”
아하루가 함박 웃으며 작은 주머니를 흔들어 보였다.
그래도 이렇게 찾아왔지? 이 정도면 우리 두 사람 여행 경비로는 충분할 거야.”
그러겠지요.”
여행에 문외한인 카미야는 그러려니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맞장구 쳤다.
, 그런데 아깐 왜 시종이라고 한 거야?”
아하루가 돈주머니를 챙기며 물었다.
카미야가 짐짓 삐친 듯한 표정을 꾸몄다.
그거야 먼저 아하루님이 절 시종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 그거? 그건 이 탑승표 때문에 그랬지.”
아하루가 아직까지도 들고 있는 초록색 마법진 탑승표를 흔들어 보였다. 그리곤 마법진 표의 색깔에 따른 차이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래서 그랬던 거야. 안 그러면 한 달은 더 기다려야 했거든. 설마 그것 때문에 삐친 거야?”
삐치긴요. 시종이 어찌 감히 주인님께 삐칠 수 있겠습니까?”
에이~. 그러지마 카미야. 화 풀어 응?”
아하루는 카미야에게 달려들어 그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카미야는 아하루의 매달리는 모습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킥 웃고 말았다.
. 화 풀었습니다.”
정말?”
.”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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