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의 범상치 않은 무게에 교환원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나 다를까 카미야가 가방 안에서 여러 개의 묵직한 주머니를 꺼내 창구에 내밀었다.
직원이 주머니 안을 들여다보곤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곁에 있던 다른 동료 직원들을 불렀다. 그리곤 직원들과 같이 카미야가 쌓아 놓은 주머니들을 거꾸로 뒤집기 시작했다.
촤르르르르릉
주머니로부터 싯누런 금화들이 한 가득 쏟아져 나왔다.
“뭐, 뭐지?”
“이게 다 금화?”
창구 앞에 쌓인 금화를 본 직원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간혹 한꺼번에 많은 수의 은화를 맡기는 경우도 없진 않았다. 그러나 지금처럼 교환소 창구 앞이 그득하게 쌓일 정도의 금화 무더기는 그들도 처음이었다.
어디 백작가나 공작가의 행사일까?
“꿀꺽!”
“어, 어서 정산부터!”
직원들은 바짝 긴장한 얼굴로 서둘러 금화를 나누어 세기 시작했다.
이 정도의 금화면 모르긴 몰라도 그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위 귀족과 관련된 일일 것이다. 그런데 만일 일이 잘못되어 액수가 잘못되거나 마법진 탑승에 늦는다면?
아마도 그 책임은 고스란히 그들에게 떨어질지 모른다. 위기감을 느낀 네 명의 직원이 필사적으로 매달려 금화를 세었다.
금화 총 4200 닢. 무게만도 18.9kg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액수다.
“여깄습니다.”
교환 직원이 떨리는 손으로 정성껏 교환표에 액수를 기입하곤 카미야에게 공손히 내밀었다.
“수고했습니다. 이건 수고비입니다.”
카미야가 그들 앞에 금화 다섯 개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금화를 덜어 낸 가방을 들고 총총히 보관함으로 향했다.
잔뜩 긴장한 채 얼어붙어 있던 직원들은 카미야가 그들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일시에 모든 긴장이 풀리면서 탈진하고 만 것이다. 그런 그들 앞에 노란 금화 다섯 개가 그들의 수고를 위로하듯 반짝거렸다.
금화를 덜어내자 벌써 배낭이 꽤 가벼워진 것 같았다.
보관함으로 되돌아 온 카미야는 배낭 안을 잠시 쳐다보다 몇 가지 물품을 더 빼내더니 아예 보관함 위로 배낭을 거꾸로 뒤집어 탈탈 털었다. 배낭에 남아있던 물건들이 보관함에 좌르르 쏟아져 내렸다.
카미야는 그 중에서 쓸 만한 것들을 골라 챙기고는 가방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얼추 무게가 맞는 것 같았다.
“흠 이정도면 되겠군.”
카미야는 보관함을 열쇠로 잠그고 밖으로 나섰다.
밖으로 나오니 아하루가 발을 동동 구르다 카미야를 보곤 급히 손짓하며 불렀다.
“빨리 와! 지금 출발한데.”
“지금 가요.”
카미야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곤 아하루에게로 달려갔다.
시간이 별로 없었다.
마법진 운행은 결코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황제나 대공이 아닌 이상 귀족들조차 마법진 운행 시간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
카미야가 달려오자 아하루는 그의 손을 잡고 마법진이 있는 철책 쪽으로 뛰었다.
“잠깐만요”
마법진의 철책 문을 닫고 있던 직원이 그들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 급히 문을 다시 열었다. 얼핏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에서 문양들이 차례로 빛을 내고 있었다.
아하루와 카미야가 간신히 마법진 안으로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직원이 바깥쪽 문을 닫았다.
마법진 안에 간신히 도착한 둘은 바닥에 주저앉아 잠시 숨을 헐떡거렸다.
곁에 있던 노인이 그런 둘을 보며 혀를 찼다.
“쯧쯧. 좀 더 서두르지 않고.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하지 않았소?”
“헉헉 그러게요……. 후~”
아하루가 숨을 고르며 겸연쩍게 대답했다.
“그래도 어쨌거나 간신히 시간에 맞춰 도착 했네요.”
아하루의 말이 마치자마자 마법진에 그려진 문양에 모두 빛이 들어왔다. 그리곤 문양들이 차례로 점멸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빛이 마법진에 새겨진 문양을 따라 커다란 원을 그리는 것처럼 보였다.
빛이 마법진의 문양을 따라 원을 그리는 속도에 점점 가속이 붙기 시작하면서 마법진에서 우웅하는 소리가 일어났다.
사람들이 얼굴을 찌푸리며 귀를 막았다.
빛의 속도가 최고조로 달하자 마침내 바닥의 마법진으로 부터 빛이 확 일어나더니 그 안에 서 있던 사람들을 일순간에 삼켜 버렸다.
마법진 안의 사람들을 삼켰던 빛이 서서히 잦아들며 주변이 모습을 다시 나타났다.
처음 마법진에 올랐을 때와 다를 것 없는 철망과 그 철망 너머의 사람들 모습이 언뜻 눈에 띄었다. 마법진 발동 전과 달라진 것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윽고 마법진이 완전히 작동이 멈추자 굳게 닫혀있던 철책 문이 열리고 직원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바랍니다. 그리고…… 짐은…… 검사 바랍니다.”
직원이 그들을 향해 뭔가를 떠들었다. 하지만 마법진이 낸 소리에 귀가 먹먹한 사람들은 여전히 갓 잠에서 깨어난 듯 멍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지금 룬에서 도착하신 분들은 출입 사무소로 움직이시기 바랍니다.”
직원이 다시 재촉하고 나서야 완전히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서서히 철책 문을 빠져나갔다.
“카미야 뭐해?”
“네? 아, 네…….”
마법진을 처음 탔는지 카미야도 멍한 표정이었다. 그러다 아하루가 부르자 정신이 든 모양이다.
“반드시 출입 신고를 먼저 하셔야 합니다. 출입 사무소 쪽으로 이동해 주십시오.”
직원이 사람들을 향해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사람들은 직원의 인도에 따라 차례로 건물에 들어섰다.
수도 룬의 웅장하고 거대한 건물과는 달리 조금은 작고 낡아 보이는 건물이었다. 사뭇 달라진 건물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들이 확실히 전혀 다른 곳에 도착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젊은이들은 어디까지 가시는 겐가?”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아하루가 슬쩍 돌아보니 조금 전 마법진에서 그에게 말을 걸었던 그 노인이었다.
“저희들은 이곳에서 루운야까지 갈 예정입니다.”
“루운야? 허 그렇게 먼 곳을?”
노인의 눈이 살짝 빛났다.
“그럼 동행은 구하셨소?”
“아직 구하진 않았습니다. 잠시 며칠 이곳에 머물면서 동행을 알아 봐야지요.”
아하루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흠. 그러시군.”
노인은 몇 번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물었다.
“그럼 머물 곳은 정하셨소?”
“아직 정하진 않았습니다만 혹시 추천하실만한 곳이 있는지요?”
아하루가 환하게 웃으며 되물었다.
노인은 여느 귀족답지 않게 공손하게 대답하는 아하루를 좋게 본 모양인지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 갈 곳을 정하지 않았다니 내 집에서 하룻밤 머물다 가는 것은 어떻겠나?”
“아닙니다. 초면인데 폐를 끼칠 순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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