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여행을 떠나다
아하루는 초조하게 시계탑을 바라보았다.
마나의 진동원리를 이용해 고대의 마법으로 만들어진 시계는 오차율 100년의 1분 정도로 정확한 시간을 자랑했다.
사실 그 오차란 것도 대부분 시계바늘이나 태엽에 오물이나 먼지가 낀 것으로 발생되는 오차로 사실상 오차가 없다고 봐도 되었다.
그런 시계탑의 시계가 벌써 2시 15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15분만 더 있으면 카미야가 오더라도 같이 동행할 수가 없게 된다.
아하루는 초조하게 마법진 관리소의 입구를 초조하게 바라보았다.
관리소 주변에는 아이들이 철망을 붙잡고 마법진 쪽을 올망졸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매일 2시간 간격으로 마법진이 발동된다. 물론 그때마다 행선지는 전부 틀렸다. 그리고 30분 간격으로 마법진에서 사람들이 나오곤 했다.
지금은 시간표상으로 ‘페리안’에서 도착할 시간이었다.
거대한 철망으로 둘러싸인 마법진에서 웅 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점점 커져갔다.
마침내 진동 소리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 마법진에서 눈부신 빛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그 빛 무리가 서서히 옅어지면서 마법진 안에 사람들의 그림자가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마법진에서 빛이 완전히 사라지자 마법진 한 가운데 무리지어 있는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났다.
마법진 발동이 끝나자 관리소 밖 철망에 매달려있던 아이들이 와 하는 소리와 함께 어디론가 뛰어갔다.
관리소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아직 마법진 이동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인솔해 출구로 유도했다.
“방금 페리안에서 도착하신 분들은 여행증을 미리 꺼내시고 저쪽 출입 사무소에 등록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갖고 오신 짐은 시간표와 함께 검역소에서 검사 받으시기 바랍니다.”
직원의 말에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빨리 마법진에서 나와 주십시오. 그리고 마법진 안에 잊으신 물건 없도록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 빠져나가자 다시 관리복을 입은 사람들이 마법진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마법진 안에 아직 남아있는 사람들을 내보내고 흘린 물건들이 없나 살폈다.
아하루는 점점 초조했다. 그런 아하루의 초조함과는 달리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만 있었다.
이윽고 마법진 안의 정리를 마친 관리인들이 나오자 다른 관리인이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다가왔다.
“3:00정각 아카발 행 마법진이 곧 발동 됩니다. 차례를 지켜 탑승하시기 바랍니다. 아직 출입 사무소에 등록하지 않으신 분들은 지금이라도 등록하고 오셔야 합니다. 등록되지 않으신 분들은 마법진을 이용할 수 없으며 황제 폐하께서 정하신 법에 따라 엄한 처벌을 받게 됩니다.”
관리인의 엄포에도 이미 모두 등록을 마쳤는지 꿈쩍하지 않았다. 관리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 중 녹색 표를 제외한 나머지 분들은 짐이 10kg로 제한됩니다. 그 이상 짐을 가져 오신 분들은 미리 정리해 주십시오. 그럼 앞쪽부터 순차적으로 탑승해주시기 바랍니다.”
관리인의 말이 마치자 대기실 입구가 열렸다. 기다리던 사람들이 웅성대더니 대기 실 밖 마법진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아하루는 사람들을 곁눈질로 보면서 계속 입구 쪽만을 쳐다보았다. 그곳엔 지금 도착한 사람들과 마중 나온 사람들, 그리고 영업용 마차로 호객하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혹시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관리인이 다가와 물었다.
아하루가 주위를 살펴보자 어느새 자기 혼자만 남아있었다.
아하루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는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그가 들어가면 마법진 탑승표가 없는 카미야는 들어올 수 없게 된다.
“마법진 탑승표는 끊으셨습니까?”
관리인이 재차 묻자 아하루는 품에서 표를 내보였다.
푸른색 표였다.
일반적으로 황금색 표는 고위 왕족이나 공작 이상의 고위 귀족 가문에서 사용하는 표로써 마법진 시간표에 구애받지 않고 어느 때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그 밑으로 일반 귀족들이 사용하는 푸른색 표와 상인들이 사용하는 녹색 표가 있다.
귀족들이 사용하는 푸른색 표는 귀족의 특성상 자신 외에 시종을 한명과 동행할 수 있었다. 다만, 짐은 일반 사람들처럼 10kg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이에 반해 상인들이 사용하는 녹색 표는 자신 혼자만 이용 가능하지만, 대신 짐을 60kg 더 갖고 탈 수 있었다.
물론 그 외에도 전시 상황이나 그에 준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쓰는 붉은색 표라든지 일반 평민이나 여행자들이 끊는 노란색 표도 있었지만 둘 다 보기 드물었다.
붉은색 표는 가끔 국경에서 지급으로 보내오는 전령문서 외엔 거의 사용되지 않았고, 일반 평민에게 발급되는 노란색 표는 귀족용 푸른색 표나, 상인용 녹색 표에 비해 저렴하지만 일반 평민들이 사용하기엔 적잖이 부담되는 가격이었다, 게다가 설사 신청한다고 해도 순번에 밀려 취소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것은 마법진 표의 탑승이 직위에 따라 순위가 매겨지기 때문인데, 노란색 표의 경우 신청 순위가 푸른색이나 녹색 아래이기 때문에 아무리 일찍 신청한다고 해도 귀족들과 상인들에게 번번이 뒤로 밀려 취소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노란색표는 지방에나 가야 몇 번 볼까, 이곳 제국의 수도처럼 마법진 이용이 활발한 곳에서 노란색 표를 보기란 하늘의 별을 따기보다 더 힘들었다.
노란색 표 외에는 신청자의 직위와 신청번호 순으로 표를 발급하는데, 아하루처럼 하급 귀족들은 보통은 한 달 전쯤 미리 끊어 놓아야 겨우 구할 수 있다. 보통 백작가문에서 편법을 동원해 한 번에 여러 장의 표를 끊어 한 번에 이동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아하루가 가진 표도 한 달 전에 미리 선금을 내고 끊어 놓은 표였다. 만일 지금 탑승하지 못한다면 이번 방학은 수도에서 그냥 보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후……”
아하루는 한숨을 내 쉬더니 관리인에게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쩔 수 없지……”
내심 중얼거린 아하루는 손에 쥔 표를 꽉 움켜쥐었다. 그리곤 자신의 발치에 놓인 배낭을 메었다.
“일행이 안 오는 군요. 다음에 이용하도록 하죠.”
아하루가 막 몸을 돌려 대기실을 나가려 하는데 관리소 입구에서 뭔가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 안됩니다.”
“지금 들어가야 한다니깐?”
얼핏 카미야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아하루는 배낭을 바닥에 팽개치곤 입구로 달려갔다. 여러 사람들 속에서도 확연히 분간되는 금발의 탐스러운 머리카락. 카미야였다.
어제 처음 만났을 때처럼 잘생긴 남자의 모습.
어째서일까? 이 실망감은?
아하루는 자신 마음 한쪽에서 피어오르는 실망감에 당황했다.
그럼 여자로 오길 바랐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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