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7일 목요일

[아하루전] R024 2. 여행을 떠나다 (6)





아무리 제국에서 공식적으로 평민과 귀족에 대한 차별을 없앴다고는 하지만, 실제 귀족에게 저처럼 아무렇지 않게 하대하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제국의 4대 장인 가문이라면 다르다. 그들의 영향력은 어지간한 수도의 명문 귀족들 보다 더 컸다. 심지어 지방의 백작들조차 안중에 두지 않는 그들이었다. 그렇기에 아하루가 귀족임을 알고도 자연스레 말을 놓았을 것이다.
우와!”
그에 반해 아하루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럼 할아버지는 엄청난 부자라는 소리네?”
그러면서 자신들이 들고 온 궤짝을 바라봤다. 저 정도의 황금이라면 능히 영지 하나를 통째로 사고도 남을 것이다. 그런데 궤짝 가득 황금보다 비싼 미스릴이라니! 믿겨지지 않았다.
그럼 이걸로 제련해서 팔면 대체 얼마야? 어마어마하겠는데?”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손해죠
손해? ?”
하렌은 카미야의 말에 또 다시 눈에 이채를 띠웠다.
보통 나라에서 미스릴로 정제된 무기를 다시 되 사갈 땐 원가에서 겨우 20%만을 더 붙여줍니다. 그런데 이런 미스릴을 제련하고 무기로 만들려면 명장의 손길이 한 달 이상은 닿아야 합니다.”
그래도 20%…….”
카미야가 고개를 저었다.
생각해 보세요. 명장들의 인건비가 좀 비싸겠습니까? 그리고 아무리 명장이라고 하더라도 미스릴이란 것이 여간 제련하기가 만만치 않죠. 그래서 간혹 제련하다 못쓰게 되는 것들도 나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전부 이쪽에서 물어내야 합니다. 그러니 잘해야 본전? 밑지지나 않으면 다행이겠죠?”
그럼 왜 그런 일을 맡는 거지?”
카미야의 말을 들어보니 오히려 손해가 막심했다.
카미야가 하렌을 힐끔 쳐다봤다. 하렌은 그들의 대화를 못듣는 척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카미야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명성이죠. 장인들이 미스릴 무기에만 매달리지는 않잖습니까? 그런데, 황제께 납품되는 물건을 만드는 곳. 제국의 공인된 4대 미스릴 무구 제작 가문으로 선택된 곳이니 그 품질이 어떻겠어요?”
아하! 그러니깐 제국에서 네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품질이 좋단 증명이 된 곳이란 말이지?”
그렇지요, 그래서 그 네 가문의 이름아래서 나온 무구나 기타 여러 가지 물건들은 일반 대장간에서 나온 물건들보다 무려 100배는 더 비싼 값이 붙는 답니다.”
후와! 100? 너무 비싼 거 아냐?”
아하루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카미야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오히려 사람들이 못 사서 난리랍니다. 그만큼 품질에 확실한 보장을 받는 셈이니까요. 생각해 보십시오. 전투 중에 칼이 부러지거나 망가지면 어떻게 될지.”
!”
게다가 네 가문 입장에서도 그만큼 투자를 했는데 그 정도 이익을 취하는 건 당연한 게 아닙니까?”
카미야의 말에 아하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여전히 의문이 남았다.
그렇게 비싸면 사갈 사람이 많지는 않을 텐데?”
이번엔 그동안 듣고만 있던 하렌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일반 평민들에게야 굳이 그런 비싼 갑옷이나 무기들이 필요 하겠는가? 그들에겐 일반 대장간에서 파는 호신 검이나 하드 레더 정도면 충분하지. 그러나 세상엔 남들 눈을 의식해야 하는 사람들이나 무기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네.”
! 그럼 귀족들이나 용병들이 사가겠군요?”
바로 그걸세.”
하렌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앞을 가리켰다.
다 왔군. 여기가 바로 내가 머무는 곳이라네.”
그들이 탄 마차는 어느새 커다란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마차가 도착하자 저택의 하인들이 나와 마차에 실린 짐을 수습해 어디론가 옮겼다.
하렌은 마중 나온 중년의 남자에게 뭔가를 지시하더니 아하루와 카미야를 데리고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삼층으로 된 저택은 웅장하면서도 소박한 멋을 풍기고 있어 차라리 성에 가까웠다.
그럼 이따 저녁 식사 때 보세나.”
하렌은 집사에게 아하루와 카미야를 맡기고 사라졌다.
둘을 안내한 집사는 저택 2층에 있는 방으로 인도하곤 주인이 저녁 식사 때 초대할 것이란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원래라면 각기 따로 방이 주어져야 맞지만, 하렌에게 카미야를 시종이라 소개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시종인 카미야가 아하루와 같은 방에서 머물며 시중을 드는 것을 당연하다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종을 배려한 듯 커다란 침대 옆에 작은 침대가 하나 더 딸려 있어 둘이 머물기엔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떨어져 있지 않은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며 방안의 널찍한 침대에 짐을 풀었다.
방은 그다지 화려하진 않았지만 정갈하고 잘 단정되어있어 아하루의 맘에 들었다. 너무 화려했다면 오히려 거북살스러웠을지도 몰랐다.
아하루님
?”
다음 일정은 어떻게 됩니까?”
일단 여기서 저녁을 먹고 나서 상인 길드에 들렸다가 루운야 지방으로 가는 상단을 알아봐야지?”
상단이요?”
카미야가 고개를 갸웃 거리자 아하루가 풀썩 웃었다.
. 아무래도 우리 둘만 이동하는 건 너무 위험하거든? 그리고 좋잖아. 여행경비도 줄이고 안전도 보장되고.”
그럼? 혹시……?”
카미야가 살짝 말끝을 흘렸다. 그러자 아하루가 고개를 끄덕여 카미야의 생각을 확인시켜 주었다.
맞아. 용병으로 따라가는 거지.”
전에도 이런 식으로 움직이셨나요?”
. 루운야처럼 외진 곳 까지 용병을 사려면 가는 경비뿐 아니라 그곳에서 돌아오는 경비까지 계산해 줘야 되거든? 또한 믿을 수 있는 용병인지 검증하는 작업도 해야 하고. 그럼 돈이 얼마나 많이 들겠어? 그래서 평소엔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 것이 우리 집안의 전통이래.”
하지만 그래도 귀족이시잖아요.”
어차피 이름만 귀족인 걸? 가서 보면 알겠지만 사는 건 평민이나 다를 바 없어.”
아하루가 부끄러움에 살짝 얼굴을 붉혔다. 그러자 카미야가 담담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 괜찮습니다. 아하루님만 곁에 있으면 어떻든 상관없으니까요.”
그렇지? 아마 이렇게 가는 게 더 재미있을 거야.”
.”
아하루의 말에 카미야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남자로 다시 변한 카미야였지만 그의 미소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환상적이었다. 카미야의 미소를 넋 놓고 보고 있던 아하루가 누워 있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
나 목욕 하고 올게.”
이대로 있으면 도무지 스스로를 제어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
저녁 먹으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잖아? 그 전에 목욕이라도 해 두려고.”
그럼 같이 할까요?”
카미야의 제의에 아하루가 펄쩍 뛰었다.
, 아니야!”
왜요? 제가 지금은 남자로 있어서요?”
, 그게…….”
아하루가 말을 흐리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듯 샤워실로 들어갔다. 들떠 있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위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