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2일 수요일

[아하루전] R023 2. 여행을 떠나다 (5)




 진짜?”
그럼요. 그런데
“?”
카미야가 슬쩍 마법진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노인을 힐끔 보며 입을 열었다.
저 노인 분께는 절 시종으로 소개하셨으니깐 일단은 계속 시종으로 있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에에? 설마 아직도 삐쳐있는 거야?”
카미야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설마요. 지금도 아하루님은 저에게 말을 낮추지만, 저는 아하루님께 말을 높여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제와서 다른 사이라면 이상하게 볼 겁니다.”
……. 그것도 그렇다. 그럼 지금부터 서로 말을 놓으면 되잖아.”
그럴 순 없죠. 엄연히 아하루님은 귀족이고 전…….”
상관없어. 카미야와 나 사이에 신분이 무슨 상관이야? 그러니 앞으로 말 놓기야?”
그건 나중 일이고, 일단은 제 말대로 해주세요. 괜히 말을 편하게 했다가 어느 순간 버릇대로 튀어나오면 더 이상하게 보이지 않겠어요? 어차피 전 아하루님께 말을 높이는 게 이미 습관이 되어 있으니까요.”
흐음? 그것도 그러네?”
그러니까 제 말대로 이곳을 벗어나기 전까진 시종으로 있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러면……
아하루는 여전히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카미야가 아하루에게 한쪽 눈을 찡끗했다.
어차피 전 아하루님의 노예가 아닌가요?”
? 노예?”
아하루는 카미야의 말을 되묻다 문득 지난밤 일이 떠올랐다. 갑자기 아하루의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그치만, 그건 그러니까……
아하루의 목소리가 한풀 꺾였다.
그렇게 해주시는 게 오히려 제 마음이 편하답니다.”
카미야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아하루도 더 이상 자기 고집만 내세울 수 없었다.
알았어. 그래야 카미야가 편하다면 그렇게 할게
저기 아까 그 노인 분께서 오시는 군요
? 아아~. 하렌 할아버지?”
하렌이요?”
. 카미야가 없는 사이 통성명을 했거든. 이름이 하렌이시래.”
둘에게 다가온 하렌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끼어들었다.
허허, 내 이름이 나온걸 보니 내 얘기를 나누고 있었던 게로군.”
카미야에게 할아버지 이름을 가르쳐 주었어요
아하루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하렌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카미야를 바라봤다.
, 자네 이름이 카미야라고 했었지?”
. 맞습니다.”
방금 전 들었다시피 하렌이란 늙은이네. 자자,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짐들을 다 챙겼으면 그만 가기로 하지.”
.”
알겠습니다.”
하렌의 말에 아하루와 카미야가 각자 자기 짐을 들었다.
하렌이 발걸음을 멈추고 둘을 보았다.
저쪽에 있는 내 짐도 좀 들어주겠나? 나이가 들고 보니 나 혼자 짐을 나르려니 영 쉽지 않아서 말이야.”
물론이죠. 그런데 어떤 거죠?”
카렌의 부탁에 아하루가 방긋 웃으며 승낙했다. 그러자 하렌이 자신의 짐을 가리켰다. 자그마한 궤짝 두 개였다.
저걸세. 저리 보여도 만만치는 않을게야.”
아하루와 카미야는 하렌이 가리킨 궤짝을 각기 하나씩 나누어 들었다. 그다지 큰 상자가 아님에도 족히 30kg은 나갈 정도로 무거웠다.
생각 외로 무거운 짐에 아하루가 낑낑대자 하렌이 넉살좋게 웃음을 지었다.
무겁지? 조금만 수고 해 주게. 대신 내 집에서 단단히 대접함세.”
기대할게요.”
아하루가 애써 웃으며 힘든 내색을 지웠다.
아하루와 카미야가 짐을 짊어지고 출입 관리소를 나서자 그 앞엔 소담한 짐마차 하나가 준비되어 있었다. 하인으로 보이는 이가 다가와 짐을 받아들곤 익숙한 행동으로 마차에 실었다.
그 사이 하렌이 먼저 마차의 짐칸에 올라가 앉았다.
이리 올라오게나. 보시다시피 초라한 마차지만.”
이 정도면 과분하지요
카미야가 인사치례를 하면서 마차에 올라탔다. 그리곤 손을 내밀어 아하루가 올라오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 모습을 보던 하렌의 눈이 살짝 빛났다 사라졌다.
그들이 자리를 잡자 마차가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출발했다.
할아버지는 상인이라고 하셨죠?”
아하루의 물음에 하렌은 웃는 듯 마는 듯한 미소로 답했다.
근데 무슨 일로 룬까지 갔던 거죠?”
장사꾼에게 달리 무슨 일이 있겠나? 그저 이곳의 물건을 그쪽에 가져다가 팔고, 오는 길에 그쪽 물건을 가져 오는 거지
아하루는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번엔 카미야가 물었다.
그런데 짐이 부피에 비해 꽤 무겁더군요.”
그랬을 걸세. 미스릴이거든.”
아하루와 카미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미스릴이요?”
어디 전쟁이라도 나려는 겁니까?”
카미야의 말에 아하루가 의아해 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 했다.
노인은 카미야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다는 듯이 허허거렸다.
전부 우리 것은 아니고 가공해서 되 팔 것들이라네.”
미스릴을 직접 가공하신단 말씀입니까!”
카미야의 크게 놀라 외쳤다.
그러자 아하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카미야. 그게 그렇게 대단한 일이야?”
당연히 그렇습니다!
? 어째서?”
미스릴이 같은 무게의 금보다 더 비싸다는 것은 알고 계시죠?”
그거야 알지. 워낙 고가인 탓에 귀족이나 기사들이 쓰는 검에나, 그것도 아주 소량 밖에 섞지 못한다는 거. 그래서 미스릴이 50% 이상 함유된 검을 보검으로 불린다는 것도. ! 그렇지. 전설로 내려오는 검들엔 80% 정도 섞여 있을 거라고도 들었어.”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미스릴이란 것이 가공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닙니다. 어지간한 실력이 없으면 망가지기 쉽거든요.”
그런데?”
그러니 그 귀한 미스릴을 아무에게나 맡길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없겠죠. 그래서 공식적으로 미스릴을 다룰 수 있을 정도의 실력과 더불어 만약 잘못됐다 하더라도 배상을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자본이 있는, 다시 말해서 한 지방을 넘어 제국 전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유력한 장인 가문에게만 허락됩니다.”
!”
제국에서 정식으로 미스릴 가공을 허락 받은 곳은 모두 네 곳. 남쪽 슈만 지방의 추멘 가문과 중부 도레온의 케롭 가문 그리고 유차레의 아히만 가문. 그리고 챠렌의 듀페리언 가문입니다. 그럼 하렌님은……?”
허허. 그렇네. 듀페리언이란 성을 쓰지. 하지만 방금전 카미야군의 말처럼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고 그저 남들보다 미스릴을 조금 더 잘 다룰 줄 아는 정도라네.”
하렌이 멋쩍은 듯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나 카미야는 그것이 하렌의 겸양일 뿐 사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제국에서 공식적으로 평민과 귀족에 대한 차별을 없앴다고는 하지만, 실제 귀족에게 저처럼 아무렇지 않게 하대하는 이는 없었다

[아하루전] R022 2. 여행을 떠나다 (4)




 아닙니다. 초면인데 폐를 끼칠 순 없지요.”
아하루는 노인이 자신에게 말을 낮췄음에도 개의치 않았다. 그런 아하루가 맘에 든 탓일까? 하렌이 재차 권유했다.
허허, 괜찮네. 이래봬도 장사꾼일세. 자고로 장사꾼은 인연을 중히 여기는 법이지. 비록 집이 초라하기 그지없지만, 그래도 여관에서 묵는 것보단 나을 걸세.”
초라하다니요. 쉴 곳을 마련해 주신다니 그럼 사양않고 감사히 머물겠습니다.”
노인은 아하루 옆에 있는 카미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범상치 않은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런데 이분은 뉘신지?”
이쪽은……
인사드리겠습니다. 아하루님의 시종 카미야라고 합니다.”
카미야가 먼저 입을 열었다.
노인은 내심 놀라며 새삼스러운 눈으로 카미야를 다시 쳐다보았다. 놀라기는 아하루도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카미야가 재빨리 아하루에게 눈을 살짝 찡긋해 보였다.
노인은 카미야를 찬찬히 쳐다보더니 아하루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정말로 자네 시종인가?”
, 그게…….”
아하루가 말을 떠듬거리자 노인은 뭔가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여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알겠네.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죄송합니다.”
허허. 죄송할 게 뭐가 있겠나? 그럼 밖에서 보세나.”
감사합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곤 출입 사무소로 들어갔다.
아하루는 잠시 카미야를 보았다.
왜 시종이라 자처했는지 궁금했다.
마법진에 탑승할 때여 어쩔 수 없었지만, 도착한 이상은 굳이 시종으로 자처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카미야의 아무렇지 않은 표정에 차마 물어 볼 수 없었다.
가시죠?”
? …….”
카미야의 재촉에 아하루는 발걸음을 옮겼다.
출입 사무소에서 아하루가 수속을 밟는 동안 카미야는 교환소로 향했다. 그리고 룬에서 받은 종이를 직원에게 내밀었다.
종이에 적힌 액수를 확인하던 직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직원은 종이를 들고 황급히 어디론가 사라졌다. 잠시 후 뚱뚱한 중년의 사나이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리곤 카미야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손님! 지금 당장 이 금액을 전부 지불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제국 경제의 중심인 수도 룬에서야 오가는 거래의 규모가 크다보니 자연 유통되는 금화도 풍부했다. 하지만 지방은 달랐다.
대부분 지방의 경제는 수도 룬에 비해 작았고, 오가는 돈 역시 금화보단 은화 중심이었다. 때문에 은화라면 모를까 금화를 한 곳에 쌓아두는 곳은 많지 않았다.
더욱이 차렌은 제국의 중심에서 한참 벗어난 지방 중에 지방이다. 그런 곳이다 보니 비록 차렌의 중심도시 아카발이라고는 하지만 카미야가 맡긴 금액을 일시에 내줄 수 있을 만큼의 금화를 비축해 놓지 못했던 것이다.
카미야는 대략 사정을 짐작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 어느 정도나 가능하겠는가?”
카미야가 하대로 물었음에도 뚱뚱한 사내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연신 땀을 닦아내며 두 손으로 공손히 작은 주머니를 내밀었다.
금화 200닢 정도는 지금 드릴 수 있지만 나머지는 며칠 더 기다리셔야 합니다.”
알았다.”
카미야가 뚱뚱한 사내가 내민 주머니를 받아 품 안에 챙겼다.
“3일 더 기다리도록 하지. 하지만 그 이내에 도착하지 않는다면 배상금을 물겠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뚱뚱한 사내가 안도하며 말했다.
3일이면 수도 룬에 요청하여 지급할 금화를 수송해 올 수 있었다. 비록 소요경비가 만만치 않게 들겠지만, 이번 교환에 얻을 이익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보통 교환소에 돈을 맡기고 찾을 때, 맡기는 쪽에 2%, 그리고 찾는 쪽에서 2%. 도합 4%의 수수료를 뗀다.
카미야가 맡긴 돈이 얼추 금화 4200 닢이니 수수료만도 무려 금화 168. 그 절반이라 하더라도 무려 금화 84닢이다.
뚱뚱한 사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만져보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액수다. 한 번에 그런 엄청난 실적을 올린다면 다음 승진은 그가 될게 틀림없을 것이다!
뚱뚱한 사내는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얼굴로 다짐했다.
책임지고 3일 안에 찾아 가실 수 있도록 준비해 두겠습니다.”
카미야는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돌렸다.
뚱뚱한 사내가 급히 허리를 굽혀 카미야를 정중히 배웅했다.
카미야가 교환소에서 나오자 누군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 거기 있었구나?”
아하루가 카미야를 발견하곤 그에게 달려왔다.
여기서 뭐해?”
잠깐 볼 일이 있어서요.”
혹시 교환소에서 돈이라도 찾았던 거야?”
그럴 필요 없어. 카미야는 내가 충분히 부담할 수 있다고.”
카미야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그래도 여윳돈이 있으면 좋잖아요.”
하긴 그것도 그러네? 그데 얼마나 찾았어?”
얼마 안 됩니다.”
그래? 그럼 나도 돈 좀 찾아올게. 짐 좀 맡아 줘.”
아하루는 자신의 배낭을 카미야에게 맡기곤 보관소로 들어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나와야 했다.
!”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글쎄, 웬 부자가 왔었나봐. 맡긴 돈만 금화 몇 천 닢이라나? 그 사람이 이곳에 있던 돈을 죄다 긁어갔다지 뭐야. 하지만!”
아하루가 함박 웃으며 작은 주머니를 흔들어 보였다.
그래도 이렇게 찾아왔지? 이 정도면 우리 두 사람 여행 경비로는 충분할 거야.”
그러겠지요.”
여행에 문외한인 카미야는 그러려니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맞장구 쳤다.
, 그런데 아깐 왜 시종이라고 한 거야?”
아하루가 돈주머니를 챙기며 물었다.
카미야가 짐짓 삐친 듯한 표정을 꾸몄다.
그거야 먼저 아하루님이 절 시종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 그거? 그건 이 탑승표 때문에 그랬지.”
아하루가 아직까지도 들고 있는 초록색 마법진 탑승표를 흔들어 보였다. 그리곤 마법진 표의 색깔에 따른 차이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래서 그랬던 거야. 안 그러면 한 달은 더 기다려야 했거든. 설마 그것 때문에 삐친 거야?”
삐치긴요. 시종이 어찌 감히 주인님께 삐칠 수 있겠습니까?”
에이~. 그러지마 카미야. 화 풀어 응?”
아하루는 카미야에게 달려들어 그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카미야는 아하루의 매달리는 모습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킥 웃고 말았다.
. 화 풀었습니다.”
정말?”
.”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