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특정식하고 카렌챠 두병 가져와”
“알겠습니다.”
주문을 끝내자 구술에서 빛이 사라지고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뭐지 저건?”
아하루가 카미야가 하는 양을 보더니 신기한 듯 물었다.
“뭐긴요? 그냥 통신구죠”
아하루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카미야는 별거 아니란 듯이 말했지만, 마법으로 통화가 가능한 통신구를 사려면 엄청난 돈을 주어야 한다는 것쯤은 아하루도 알고 있었다.
“그렇진 않아요. 수정을 깎아 만든 일반적인 통신구는 비싸기도 하지만 이쪽 모습도 고스란히 비치기 때문에 손님들이 불편해 한답니다. 그래서 대신 흑요석을 깎아 만든 통신구를 사용하는데 소리만 전달하기 때문에 저렴한데다 이런 곳에서 사용하기에도 적절하죠.”
“아 그렇구나.”
아하루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 흥미를 잃곤 카미야의 가슴과 유두를 만지작거렸다. 간지러움을 느낀 카미야가 풉하고 웃더니 살짝 몸을 일으켰다.
“그럼, 전 식사가 올 동안 샤워 좀 하고 올게요.”
“응 갔다 와.”
카미야가 침대에서 뒹굴 거리는 아하루를 두고 샤워실로 들어가 물을 틀곤 샤워를 시작했다.
할 일없이 침대에서 빈둥거리던 아하루는 턱을 괴고 가만히 샤워 중인 카미야를 바라보았다. 뜨거운 물에서 올라오는 하얀 김이 카미야를 감싸고 있었지만 몸 전부를 감추지는 못했다.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 그 사이를 받치고 있는 부러질 듯 가냘픈 허리. 여자가 된 카미야의 몸은 마치 유명한 장인이 조각한 사랑과 풍요의 여신 아나크온을 보는 것처럼 환상적이었다.
왜일까?
넋을 잃고 바라보다 문득 의문이 떠올랐다.
함부로 범접할 수 없을 정도의 아름다운 미모와 기품은 또 어떤지. 굳이 여자로 변하는 수고를 않더라도 누구라도 그의 시선에 목말라 할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아무리 수정으로 된 통신구보단 싸다지만 엄연한 마법 도구다. 하찮은 마법 도구조차 엄청나게 비싸게 팔린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비록 흑요석으로 만든 수정구라 하지만 그 값어치는 아하루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고가의 마법 물품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카미야다.
게다가 이런 곳을 수도에서 버젓이 운영할 정도면 권력과도 맞닿아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그런 그가 뭐가 아쉬워서?
그에 비하면 아하루 자신은 귀족이라고는 하지만 시골의 별 볼일 없는 흔한 남작 가문의, 그것도 상속 받을 가망도 없는 변변찮은 셋째에 불과하다. 이래선 수도에 거주하는 일반 평민과 나을 바가 없다.
그렇다면 외모는?
문득 불룩 튀어나온 아랫배가 거북살스러웠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진작 운동이라도 해 놓는 건데. 아니, 살이라도 뺐더라면.
여기까지 생각하던 아하루가 피식 웃었다.
제아무리 아하루가 아무리 날씬하고 멋들어진 몸매라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결코 카미야의 눈에 들진 못했을 거다.
그런데 어째서?
“무슨 생각해요?”
카미야가 물었다.
샤워실에서 방금 나온 듯 머리카락에선 방울진 물방울이 떨어져 내렸고 촉촉하게 젖은 몸에는 커다란 수건으로 두르고 있었다.
“그냥.”
“그러지 말고 말해 봐요.”
카미야가 아하루 곁으로 다가와 침대 모서리에 살짝 걸쳐 앉았다.
아하루가 카미야의 무릎에 머리를 괴고는 손을 뻗어 수건 안을 헤쳤다. 손 가득 탐스런 카미야의 유방이 쥐어졌다. 아하루는 장난치듯 카미야의 가슴을 만지작거리며 방금 전 자신이 생각한 것들을 말했다.
“솔직히 난 모르겠어. 왜 당신이 나 같이 별 볼일 없는 사람을 좋아하는지.”
“그건……”
아하루가 가슴을 갖고 놀던 손에 힘을 주었다. 갑작스런 아픔에 카미야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이 막혔다.
“그 이유가 어쨌든 상관없어. 난 이미 널 좋아하게 됐고, 그래서 약속했으니까. 중요한 건 네가 지금 내 곁에, 내가 지금 네 곁에 있는 거니까.”
“미안해요……”
카미야가 나직하게 말했다.
“어쩌면 좋아하는 것을 넘어 널 사랑하게 될지도 몰라.”
“……”
“하지만 솔직히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몰라.”
“괜찮아요. 무엇을 어떻게 하든……. 그 모두가 나에겐 사랑의 몸짓이 되어 다가오는 걸…….”
“그래서 널 아프게 하거나 괴롭게 할지도 몰라”
“상관없어요.”
“네 곁에 있지만, 그래서 네가 다른데 눈을 돌리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정작 난 다른 곳에 눈을 돌릴지도 몰라”
“그러면 난 슬퍼지겠죠. 하지만 이젠 돌이킬 수 없어요. 이미 난 당신 것인걸요? 나에겐 더 이상 선택할 자유가 없어요.”
“정말?”
“이미 당신은 나의 몸과 마음의 주인이에요.”
아하루는 카미야의 얼굴을 잡고 끌어 당겼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들고 가늘고 탐스런 카미야의 입술에 살짝 입맞춤했다.
“어쩌면 너를 험하게 다룰지도 몰라.”
“당신 뜻대로.”
“어쩌면 너에게 온갖 치욕과 모욕을 줄 수도 있어.”
“그것조차 기쁘게 받아들일게요.”
“널 노예처럼 대한다면?”
“전 이미 당신의 노예랍니다.”
‘똑똑’
서로 깊은 눈 맞춤을 하고 있을 때 문에서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 주문한 식사가 도착했나 봐요.”
카미야가 얼른 목욕 수건을 거쳐 걸치곤 문 앞으로 갔다. 그리곤 문에 달린 뭔가를 조작했다.
철컥
문 아래쪽이 열리면서 작은 수레가 들어왔다.
그 수레 위에는 동그란 은빛 덮개로 덮은 접시와 한 눈에 보기에도 귀해 보이는 포도주가 들은 통이 있었다.
카미야는 그 수레를 침대 근처까지 밀고 오더니 음식을 들고 아하루에게로 다가왔다.
음식을 덮어둔 뚜껑을 열자 그곳엔 갓 만들어진 듯 김이 모락모락 나는 스테이크와 고소한 냄새가 나는 빵, 그리고 약간 매운 냄새가 나는 스프가 있었다.
보기만 해도 군침 도는 음식들이었다.
아하루가 음식을 먹으려 몸을 일으키자 카미야는 직접 음식을 잘게 자른 후 포크로 찍어서 아하루의 입에 넣어주었다.
아하루는 마치 게으른 왕이라도 된 것처럼 카미야의 시중을 받으며 음식을 받아먹었다.
포만감과 행복감을 느꼈다.
아하루는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미야가 무슨 목적으로 그를 받아들이고, 또 그와 관계를 맺었는지 이제 상관없었다. 카미야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냥 좋았고, 또 그것만으로 만족했다.
카미야도 자신이 주는 대로 먹는 아하루를 보면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사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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