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루가 깨지 않도록 문을 살며시 여닫으며 밖으로 나갔다
“과연 허락할까? 어쨌든 해봐야겠지. 시간이 얼마 없군. 2시 45분이라고 했지?”
혼자 중얼거리던 카미야는 또 다른 방에 들어가서 지배인인 듯한 사람에게 뭔가를 지시했다.
조금 후 클럽 앞에 검은색 마차가 도착했다.
카미야가 올라타자 마차는 아직 어두컴컴한 밤거리를 어딘가를 향해 질주하듯 달리기 시작했다.
***
깊은 잠에 뒤척이고 있던 아하루는 문득 어렴풋이 소리를 들었다.
“아하루님 그만 일어나세요.”
누군가 조심스럽게 흔드는 기척도 느꼈다. 하지만 아하루는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가뜩이나 잠이 많아 기사학교에서 지각대장을 도맡았던 그에게, 더욱이 오늘처럼 새벽까지 무리했던 그에게, 그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가뿐하게 일어나라는 것은 너무 큰 요구였다.
“음…….좀 만 더 잘게……. 쿨”
“아하루님. 벌써 9시 반입니다. 그만 일어나세요.”
“으응. 싫어…….”
아하루는 배게 밑으로 고개를 파묻었다.
언뜻 카미야의 목소리가 아까와 달리 더욱 가냘프다는 것을 느꼈지만 사뿐히 무시했다.
“아하루님. 제발 일어나세요.”
“흐응…….”
목소리는 점점 더 다급해졌다. 그러나 그럴수록 아하루는 침대 안으로 더욱 파고들 뿐이다.
상대는 더 이상 말로는 안 되겠는지 아하루를 흔들었다.
“벌써 9시 반입니다. 제발요!”
“으응 5분만 더 자고……”
아하루는 흔드는 팔을 치우려 손을 휘저었다.
뭔가 물컹한 게 만져졌다.
물컹?
손으로 좀 더 만지작거렸다.
한 손에 들어 올 정도로 작고 소담했다. 문득 그것을 더듬던 아하루의 손바닥에 작고 말랑말랑한 것이 스쳤다. 손을 되돌려 작고 말랑말랑한 건포도 비슷한 그것을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이건……!
어렴풋이 카미야의 아름다운 얼굴이 떠올랐다.
그럼 이건 카미야의 것인가?
아하루는 헤벌쭉 웃으며 유두를 포함해 가슴 전체를 손에 쥐었다.
“?”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카미야의 것은 한 손에 다 담지 못할 정도로 컸다. 그러면서도 튕기듯 그 탱탱함이란. 그런데 지금 만지고 있는 것은 그 못지않게 따뜻하고 부드러웠지만 어딘지 탄력이 부족했고 무엇보다 작았다.
“?”
마법의 약효가 다 되서 도로 작아진 걸까?
아하루는 떠지지 않는 눈을 간신히 열어 확인했다.
눈앞에 속이 비치는 얇은 천이 보였고, 그 안에 있는 작고 여린 하얀 빵을 만지고 있는 자신의 손이 보였다. 손을 치우자 그 작은 빵 위에 연분홍 빛 작은 건포도가 다소곳이 얹혀 있는 것이 보였다.
“응? 뭐야. 카미야가 아니네?”
아하루는 여태까지 주무르던 가슴에서 손을 떼고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냠냠……?”
얇은 천, 하얀 빵, 연분홍 빛 건포……도? 유난히 작은 가슴! 가냘픈 목소리!!!
“!”
카미야가 아니다!
아하루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튕기듯 침대에서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작고 여린 소녀의 얼굴 절반을 가릴듯한 커다란 눈망울과 마주쳤다.
소녀가 급히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그 커다란 눈망울 가득 겁을 잔뜩 담아 금방이라도 눈물이 똑하고 떨어질 것만 같았다.
아하루는 소녀에게서 시선을 떼선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낯선 방. 낯선 침대. 그리고 낯선 소녀. 그리고 낯선 테이블 위엔 낯선 검정색 공.
아니, 눈에 익은 것도 있었다.
낯선 검정색 공 옆에 잘 개켜진 눈에 익은 자신의 옷이 있었……다?
“으익?”
아하루는 황급히 자신을 돌아보았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맨몸이었다.
“으헉!”
아하루는 기겁한 비명을 지르곤 얼른 이불을 들어 자신을 감쌌다. 그리곤 황급히 주위를 더 세심히 돌아보았다.
그제야 지난밤의 일들이 또렷이 생각났다. 형들을 따라 클럽에 왔던 일, 그리고 카미야를 만났던 일.
“누, 누구시죠?”
“말씀 낮추십시오. 아하루님.”
소녀가 무릎을 꿇은 채 넙죽 엎드렸다.
“어, 누구……지?”
약간의 여유를 얻은 아하루는 소녀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소녀의 몸에는 거의 투명하다시피 한 얇은 원피스 한 장만 달랑 걸쳐져 있을 뿐이었다. 얼마나 얇은지 가슴에 달린 핑크색 젖꼭지와 아랫부분의 거뭇거뭇한 거웃이 그대로 훤히 비쳤다.
그 얇은 옷조차 살짝 벗겨진 소녀의 덜 여문 가슴은 아직 어려서인지는 몰라도 탐스럽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아담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에 절로 만지고픈 생각은 들었다.
아하루는 의식적으로 소녀의 가슴에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갓 15세 정도?
아직 여인이라 부르기엔 너무 여린 소녀다.
이제 갓 어린티를 벗어난 귀엽고 약간 갸름한 얼굴, 그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눈은 여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인형 같은 귀여움이 엿보였다.
“아, 아하루님의 아침 시중을 들기 위해서 왔습니다.”
소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제야 지난밤에 했던 카미야의 말이 떠올랐다.
“카미야도 참…….”
그러고 보니 카미야가 보이지 않았다.
“근데 카미야는?”
“카미야님은 새벽에 나가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응? 어디 갔는데?”
“죄송합니다. 자세한 것은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음……”
아하루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소녀의 위치로 보아 그런 것을 일일이 알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대신 전하라는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소녀가 급히 말을 이었다.
“뭔데?”
“이따가 마법진에서 뵙자고 하셨습니다.”
“그래?”
새벽에 말한 대로 정말 따라오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선배들과 만날 시간도 얼추 다된 것 같았다.
“근데 지금 몇 시지?”
“지금 아홉시 반입니다. 먼저 샤워부터 하시겠습니까?”
소녀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선배들과 만나기로 한 시각이 10시니깐 아직 조금은 여유가 있었다.
아하루는 고개를 끄덕이곤 일어서려다 자신이 아무것도 입지 않은 사실을 기억해내곤 소녀에게 말했다.
“잠시 나가줄래?”
아하루의 말에 소녀의 얼굴이 사색이 되더니 바닥에 엎드렸다.
“죄,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세요”
소녀가 겁을 집어먹으며 말하자 아하루가 급히 말했다.
“아, 아냐!”
아하루가 소리치자 소녀의 얼굴을 더욱 굳어졌다. 소녀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것처럼 울먹였다.
대체 어떤 교육을 받은 건지…….
아하루는 소녀의 얼굴을 보곤 작게 한숨을 내셨다. 그리곤 차분하게 말했다.
“그냥 나 혼자 샤워하고 싶어서야”
“제가 맘에 안 드시면 다른 사람을 부……”
“아니 됐어.”
소녀의 말을 중간에서 끊은 아하루는 옷을 집어달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어차피 소녀의 하는 행동으로 봐선 카미야가 했던 것처럼 샤워실까지 따라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하루는 될 대로 되라지란 심정으로 이불을 걷곤 침대에서 일어났다. 잠에서 갓 깨어난 탓인지 그의 분신이 발딱 고개를 치켜들며 까딱거리고 있었다. 지난밤의 후유증이 남은 아침이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소녀의 옷차림 때문인지 몰라도 여느 아침과는 다르게 더 우람하게 커진 것 같았다.
소녀는 아하루가 일어서자 그제야 울먹임을 멈추고 준비해 두었던 슬리퍼를 아하루의 발에 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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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18일 수요일
[아하루전] R015 1. 카미야와의 만남 (15)
2012년 4월 14일 토요일
[아하루전] R014 1. 카미야와의 만남 (14)
사랑일까?
자신에게 하룻밤 만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
카미야는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행복했다.
비록 그것이 거짓된 행복일망정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진실이다.
이 행복을 거부하고 싶지 않다. 놓치고 싶지 않다.
이대로 이 행복을 지키고 싶다.
“아하루님?”
“응?”
아하루가 카미야를 바라보았다.
“왜?”
“집에 가신다고 하셨죠? 그러면 다음엔 언제쯤 들를 거예요?”
“흐음…… 글쎄?”
아하루가 잠시 속으로 계산을 하더니 대답했다.
“지금이 8월이지? 두 달간 방학이니깐 10월쯤?”
“그렇게나 늦게?”
“응. 어쩔 수 없어. 루운야까지 가야하거든?”
“루운야라면?”
“아마 이름도 제대로 들어보지 못했을 걸? 차렌 지방에서도 벽지에 속하는 곳이니깐”
“그래요?”
“응, 차렌의 중심도시 아카발에서부터 또 일주일은 잡아야 하니깐”
“그렇게 멀어요?”
카미야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거리상은 그저 말 타고 3일거리 밖에 안 되는데 산이 험하고 산적들도 자주 출몰하기 때문에 보통은 모여서 가거든?”
“안가면 안돼요?”
“안 될 거야. 집에 형님들과 아버님을 봐야하니깐. 만일 안내려 가면 집에서 쳐들어올걸?”
“설마.”
“정말로, 어머님이 주동해서 식구들 몽땅 수도로 몰려올지도 몰라. 이래봬도 우리 집안에선 귀염둥이로 통한다고.”
아하루의 말에 카미야가 킥하고 웃었다. 카미야가 다소곳하게 그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떼를 부리듯 말했다.
“흠 그럼 좀 더 늦게 가면 안돼요?”
“안 돼, 벌써 마법진 시간표를 받아 두었는걸”
“언젠데요?”
“내일, 아니 오늘이지? 이따가 오후 2시 45분. 수속 밟고 준비하려면 한 시간쯤 미리 가야겠지?”
“알았어요. 그럼 그때까진 저랑 같이 있어요.”
“그게……”
아하루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실은 아침에 선배들과 다시 만나기로 했거든”
“그럼 어쩔 수 없군요. 흐음. 기숙사까지 따라 갈까나?”
카미야의 투정어린 말에 아하루가 고소를 지었다.
“글쎄? 외부인 출입금지라 들키면 난리날걸?”
“흥, 그깟 기숙사하나 몰래 못 들어갈까 봐요?”
“그러지 말구 집에 같이 갈까? 아, 안 되는 구나 카미야는 이곳을 봐야지……”
“음…….”
뜻밖의 제안에 카미야는 잠시 주저했다.
“그런데 제가 같이 가도 되요?”
카미야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아하루는 그런 카미야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싱긋 웃었다.
“괜찮아. 정 뭐하면 친구라고 소개하지 뭐”
“친구요?”
“그럼 애인이라고 소개할까? 부모님이 뒤로 넘어지는 것을 보게”
“후후, 저도 그 광경을 보고 싶군요.”
카미야가 다시 아하루의 품에 안겼다.
“아하루……. 가고 싶어요. 아하루의 가족들도 보고 싶고. 정말 가도 되겠어요?”
“당연하지.”
아하루가 카미야의 등을 토닥였다.
“그런데 길이 좀 험할 거야.”
카미야가 살짝 아하루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이 진심으로 걱정하는 얼굴인 것을 보곤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그건 걱정 마세요. 이래봬도 스스로를 지킬 정도는 된답니다?”
“좋아! 그럼 함께 가는 거야?”
아하루의 말에 카미야는 그의 입에 살짝 입맞춤을 했다.
“아참, 몇 시에 선배들을 만나기로 했죠?”
“음. 아마 10시였지?”
“그렇게나 일찍? 지금이 새벽 5시니깐 지금이라도 푹 자둬요. 전 그동안 갈 준비 하고 올게요.”
카미야가 아하루의 품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만 자요. 이따가 9시 반쯤 깨울게요.”
“응? 같이 안자?”
“같이 떠나려면 이것저것 준비할게 많아서요.”
“그렇지만 나 혼자 자려니 쓸쓸한데?”
“그럼 여자라도 하나 넣어드려요?”
“응?”
카미야가 슬쩍 아하루의 시선을 피했다.
“다른 여자를 안는 것을 이미 허락했으니까…….”
“그게 아니라 이곳에 여자도 있었어?”
“아까 종업원이 한말 못 들었어요? 얼마 안 돼지만 있긴 있어요.”
“그랬구나. 아함.”
아하루가 크게 하품을 하더니 침대에 털썩 누워 양 팔을 벌렸다. 배가 부르니 졸음이 쏟아져 온 탓이었다.
“사양할게. 지금은 피곤해“
“알겠어요. 그럼 이따가 마법진 앞에서 봐요?”
“응……”
정말로 피곤했던지 아하루는 베개를 베자마자 그대로 골아 떨어졌다.
카미야는 그런 아하루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더니 입에 입맞춤을 하곤 아하루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리곤 바닥에 떨어진 아하루의 옷을 집어서 한쪽에 잘 개서 놓곤 그제야 자신의 옷을 입었다. 그리고 아하루가 깨지 않도록 문을 살며시 여닫으며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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