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13일 화요일

[아하루전] R002 1. 카미야와의 만남 (2)





 어떻게 하지? 한명은 안 된다는데?”
경비원의 단호한 말에 놀란이 얼굴을 찌푸리며 일행에게 돌아섰다.
그러자 데민이 잠시 망설이더니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것은 또 다른 회원증이었다.
, 저 자식이?”
놀란이 데민이 꺼낸 회원증을 보며 어이없어 했다.
곁에 있던 지만이 데민을 쥐어박았다.
이 자식이 혼자 근엄한척하더니 뒤로 호박씨 까고 있었구만
~ 설마 데민이 이럴 줄 몰랐는데?”
놀란까지 가세해 놀리자 데민은 슬쩍 얼굴을 붉히며 화제를 돌렸다.
안 들어 갈 거야?”
! 치사해! 엉큼하게 혼자서만 만들고
, 좋은 게 좋은 거지. 덕분에 잘 됐잖아?”
놀란이 투덜거리는 지만을 다독이며 일행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하루는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온통 고급스러운 자재로 처바른 듯 화려한 통로가 펼쳐져 있었다.
우와
아하루가 감탄사를 내뱉자 지만은 피식 웃었다.
나도 첨엔 그랬지 마치 별천지에 온 것 같지?”
화려한 통로를 지나자 안내원이 그들을 조그만 방에 데려갔다.
방 안 역시 화려했다.
명문가에서나 어울릴 법한 대리석 테이블과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가죽 의자가 테이블 양쪽에 둘러져 있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도 여느 귀족가의 파티에나 어울릴법한 각종 희귀한 과일과 명주로 소문난 술들이 그득했다.
다만 특이하게 방 안쪽 벽 전체가 두꺼운 커튼으로 되어 있어 어딘지 묘하게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 비밀은 곧 드러났다.
아하루 일행이 자리에 앉자 그들을 안내했던 안내원이 줄을 당겨 커튼을 젖혔다.
커튼 안쪽은 벽이 아니라 유리창이었다. 그리고 그 유리창 너머로 널찍한 홀이 요란한 조명에 훤히 드러났다.
그럼 고르시지요.”
안내원이 허리를 숙였다.
지만은 어리둥절해 하는 아하루에게 귀에 속삭였다.
저들 중에서 아무나 고르라고
골라요?”
지만은 유리창을 가리켰다.
화려한 조명 아래 많은 사람들이 홀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 ……
그제야 대충 뭔가를 감 잡은 아하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난감한 얼굴로 홀을 살폈다. 화려한 옷을 입은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개성 넘치는 옷을 입으며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러다 종업원 옷을 입은 사람이 다가가 뭔가 말을 하면 고개를 끄덕이곤 종업원을 따라 사라지곤 했다.
아하루가 어쩔 줄 몰라 할 때 선배들은 각기 마음에 드는 한명씩 지목하고는 방을 나섰다. 그러면서 아하루에게 말했다.
좋은 경험이라 생각해
잘해봐
건투를
혼자 남은 아하루는 더욱 난감했다. 자신을 골탕 먹인 선배들이 이가 갈렸다. 그러나 어쩌랴 애꿎은 과일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술기운이라도 빌려볼까 싶어 술병을 들었다가 한 병에 시가 금화 2닢이나 하는 명주임을 알아보곤 마개를 딸 엄두도 내지 못했다.
저기...”
네 고르셨습니까?”
묵묵히 기다리고 있던 종업원이 깍듯하게 인사하며 물었다.
그러자 오히려 당황한 것은 아하루였다.
아니, 그게 아니라...”
여기 처음이신가 보군요. 괜찮습니다. 천천히 고르시면 됩니다.”
, .”
다 안다는 듯 살짝 미소 짓는 종업원의 미소에 도리어 얼굴이 싯벌거진 아하루가 물을 한잔 들이켰다.
, 그런데. 이곳은 정말 특이하군. 여자들에게 남자 분장을 시키다니? 저러니 꼭 진짜 남자 같잖아?”
아하루가 애써 무안함을 감추려는 듯 홀 밖의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하루의 말대로 홀에는 여자 옷을 입은 사람들 말고도 남자 옷을 입은 사람도 많았다.
저들은 진짜로 남자입니다.”
?”
일순간 아하루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럼 저들은……
. 짐작하시는 대로입니다.”
그럼 저 사람은?’
아하루가 가리킨 곳에는 마치 커다란 빵 같은 가슴을 반쯤 드러내 놓고 있는 여자가 다른 사람과 얘기하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는 중성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였다.
몸만 여자죠
?”
들어보셨겠지요? 여자가 되는 마법이라고
, 그럼. 여기 있는 전부 남자라는……?”
전부는 아닙니다. 저희 클럽에서는 손님처럼 동행이시거나 아직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서 조금이지만 진짜 여자도 있습니다.”
~ 그렇다면 그런 여자를 불러줄래?”
죄송합니다만 규칙상 제가 불러드릴 순 없습니다. 저 속에 있는 진짜 여자를 찾을지는 손님 운에 달렸죠?”
아하루가 창을 힐끔 바라봤다.
몇 명의 여자들이 창 앞을 지나쳤다. 그들의 몸매나 얼굴은 한 눈에 혹할 정도로 예뻤다. 하지만 아무리 예뻐도 정작 수술한 남자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역겹게 보였다.
아하루는 눈을 최대한 뜨고 홀 안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정말 내가 골라야 되는 거야?”
, 저희 클럽만의 색다른 묘미이기도 합니다.”
아하루는 어딘지 중성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 남자? 들을 계속 바라보았다.
그때 아하루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아하루가 있는 방 바로 앞의 기둥에 기대고 서서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비록 남자복장을 하곤 있었지만 찰랑거리는 머리카락과 호리호리한 몸매를 보였다.
그녀도 누군가 자신을 바라본다는 느낌이 들었는지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와 아하루의 눈이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마주쳤다. 그러나 그녀는 관심 없다는 듯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 틈에 본 그녀의 얼굴은 비록 가면을 썼지만 가면 아래의 갸름한 얼굴선으로 봐서 미인이라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렇다면 분명 여자이리라 아하루는 단정했다.
아하루는 그녀를 지목했다.
?”
종업원은 그가 말한 방향으로 두리번거렸다.
저 사람.”
누구인지 정확하게 말씀해 주셔야죠?”
그러니깐 바로 앞 기둥에 기대고 얼굴에 가면을 쓰고 있는 저 사람 말이야.”
?”
아하루의 말을 듣기라도 했는지 기둥에 서있던 여자가 몸을 움찔하더니 아하루가 있는 창을 돌아 봤다.
다시 아하루와 그녀의 시선이 마주쳤다.
가면 속 그녀의 눈은 투명하면서도 맑으면서도 어딘가 차갑고 이지적이었다. 그녀의 눈을 바라보던 아하루는 얼마 못가 얼굴을 붉히며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그런 아하루가 의외였는지 살짝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리곤 무슨 생각을 했는지 눈빛을 반짝거렸다.
막 종업원이 입을 열려는 찰라 그녀가 아하루가 있는 창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아주 고운 음성으로 말했다.
저를 선택하셨다고요?”
…….”
아하루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면 쓴 여인은 아하루를 잠시 쳐다보더니 싱긋 미소를 지었다.
오늘 처음 오신 분인가 보네요?”
아하루는 얼굴이 더욱 새빨개졌다.
그녀에게서 왠지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이 느껴져 혹시 자신이 뭔가 실수했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옆에서 종업원이 안절부절 못하는 것을 보니 그가 확실히 잘못한 것 같았다.
……, 내가 잘못 한 거야?”
가면 쓴 여인은 안절부절 못하는 아하루를 보고 다시 한 번 싱긋 웃더니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럴리가요. 아무나 고르시면 된답니다. 그럼 갈까요?”
여인은 경악해 하는 종업원에게 살짝 눈짓을 하곤 홀을 빠져 나갔다.
종업원이 처음과는 달리 굳어진 표정으로 아하루를 지금 있던 방에서 이끌고 나와 다른 방으로 인도했다.
 
새로 들어간 방은 좀 전의 방과는 달리 의외로 정결하고 깨끗한 느낌이었다. 다만 방 중앙에 대여섯 명이 뒹굴어도 될 만큼 널찍한 침대가 놓여 있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은 아하루의 얼굴을 붉히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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