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괜히 눈 밖에 나면 개죽음 밖에 될게 없어.”
다른 직원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 직원을 노려보았다. 무안해진 직원은 어쨌건 머리에 새겨진 문장을 잊지 않으려고 머릿속에 다시 그려보았다. 블랙 드래곤이 브레스를 내뿜고 있는 장면과 6이란 글자를. 아마 어쩌면 평생 잊지 못할지도 몰랐다.
밖으로 나온 대장은 소장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귀에 대고 은밀히 말했다.
“듣기만 하게. 자네도 이런 곳에서 평생을 썩고 싶지는 않겠지?”
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지, 자네가 출세 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지. 받게나.”
대장은 소장에게 주머니에서 꺼낸 자그마한 수정구를 건넸다. 소장은 그걸 얼른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그건 통신구야. 보기엔 작아도 어지간한 통신구보다 성능이 좋지. 다음에 1176함 주인이 오면 그 통신구로 곧장 우리에게 알려만 주면 되는 거야. 어때 참 쉽지?”
그의 말에 소장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해내리라고 믿겠어. 만일 그자가 마법진을 통과했는데도 연락이 안 왔다면..”
대장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소장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쥐었다. 그러자 소장의 얼굴이 흑색이 되었다.
“저 멀리 산속으로 들어가는 게 차라리 나을 거야. 물론 그래봤자 목숨을 삼일 정도 더 연장하는 것 밖에 되지 않겠지만.”
“절,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소장은 사색이 된 얼굴로 급히 말했다.
“당연하지, 난 소장이 절대로 그런 바보 같은 일을 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 후후. 앞으로의 승진을 미리 축하하네.”
“감, 감사합니다.”
소장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꾸뻑 인사했다.
대장은 뚱뚱한 소장을 잠시 바라보다 2열로 정렬해있는 수하들에게 짧게 말했다.
“가자”
그의 말에 대원들은 절도 있게 열을 지어 관리소를 빠져나갔다.
그들이 빠져나가자 그제야 직원들과 남아있던 승객들의 안색을 펴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놀란 승객 중 한명이 물었다
“무슨 일이래요?”
그러자 다른 승객이 대꾸했다.
“이곳의 화장실 청결을 조사하러 나왔데요”
“우와 무슨 놈의 검사가 저리도 살벌하다냐?”
“그러게 말이에요“
“어쨌거나 잘됐어. 여기 화장실이 그동안 얼마나 지저분했다고?”
“맞아요! 그곳에 들어가면 얼마나 냄새가 역겨운지? 바로 토할 것 같아서 도망 나왔다니까요?”
“수도에 있는 관리소의 화장실이 저모양이니 지방은 어떻겠어요?”
승객들이 저마다 각각 떠드는 와중에 직원들은 그동안 기사들이 어질러놓은 걸 정리하랴, 그사이 마법진에 도착한 사람들을 인솔해내랴, 사람들의 눈가림을 위해 대청소하랴 정신없이 바빴다.
***
아하루와 그녀가 끌어안고 서로를 탐하고 있을 때 누군가 침실 문을 똑똑 두드렸다.
아하루와 그녀가 욕탕을 나왔다.
“뭔가?”
그녀가 짐짓 목소리를 깔고 문 쪽에 대고 물었다.
그러자 문 너머에서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님께서 식사준비가 다 됐다고 내려오시랍니다.”
“벌써?”
“네, 아직 점심도 드시지 못하셨을 거라면서 저녁을 일찍 만들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알았다. 내려간다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시녀가 방 앞을 떠나는 소리를 들으며 아하루를 보곤 말했다.
“저녁이 준비되었다는 군요?”
“그래? 그럼 옷 입고 나가자”
“그러죠.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녀는 아하루가 벗어 놓은 옷을 챙겨선 옷 입는 것을 도왔다. 아하루도 이제는 그녀의 시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아하루가 옷을 다 입자 그녀는 아하루를 먼저 내보내곤 그제야 자신의 옷을 주섬주섬 입으며 외모를 손봤다. 방을 나선 그녀는 어느새 다시금 남자인 카미야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다시 그 약을 먹은 것일까? 아니, 그럴 시간은 없었다. 그럼 외모만 그렇게 꾸민 것이리라.
저녁은 널찍한 홀에 차려져 있었다. 긴 식탁이 홀을 가로질러 길게 놓여 있었는데 상석은 아까 낮에 본 하렌이 차지하고 있었고 주위로는 부인과 식구들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아하루와 카미야가 식탁에 비어있는 자리에 다가가 앉았다. 그 둘이 자리에 앉자 하녀들이 준비했던 음식을 나르기 시작했다.
하렌이 먼저 자신의 가족들을 소개했다.
“이쪽은 내 아내 에프리샤. 그리고 그 옆이 내 큰아들 아함과 며느리 하사엘이고, 큰 손자인 아람과 큰손녀인 로데일세. 그리고 이쪽은 둘째 아들 마나힘과 둘째 며느리인 로아스라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아이들은 둘째 손녀 타밀과 둘째 손자 아하브 그리고 막내 손녀인 다비라네.”
하렌이 소개를 하자 각각 머리를 꾸벅여서 인사를 했다.
“그리고 이쪽은 내가 수도에서 오는 동안에 만난 아하루 남작자제와 그 시종인 카미야군이야.“
하렌의 소개가 끝나자 갑자기 약간 소란스러웠다. 특히 여자들이 더했는데 그 원인은 카미야 때문이었다.
“어머, 어떻게 시종이 주인과 같이 자리에 앉아 밥을 먹을 수 있지?”
새침한 표정의 타밀이 하는 말이 아하루의 귀에 들어왔다.
딴에는 주의하느라 조용히 말한 모양인데 목소리가 컸던지 아하루의 귀에까지 전해진 것이다.
아하루가 펼쳤던 냅킨을 접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낮에 먹은 게 있어서 저녁 생각이 나지 않는 군요”
아하루가 짐짓 무서운 눈으로 타밀을 노려보며 말하자 갑자기 장내는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이런, 내 식솔들이 자네에게 무례히 행동했네 그려. 내 사과하지.”
아하루에게 고개 숙여 사과한 하렌은 이번엔 자신의 식구들을 향해 엄한 얼굴로 말했다.
“카미야군은 비록 아하루 남작 자제의 시종이지만 그 둘은 아주 친한 친구 사이다. 너희들이 격식을 정 따지겠다면 감히 귀족과 한 자리에 앉아 먹는 것도 큰 실례를 범하는 것이 아니냐? 더구나 여기 두 사람은 내 초청으로 우리 집에 오셨다. 그런데 오늘 너희가 내 얼굴에 아주 먹칠을 하는구나.”
하렌의 호통에 식구들은 모두 고개를 푹 숙이고 숨죽였다. 졸지에 입장이 난처하게 된 아하루는 엉거주춤 선채 어찌할 줄 모르게 됐다.
그때 카미야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카미야에게 쏠렸다. 카미야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아하루의 뒤로 갔다.
“아하루님 앉으시지요.”
아하루는 카미야의 눈을 바라봤다. 그리곤 카미야의 흔들림 없는 눈을 보곤 그 말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카미야는 하렌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여보이곤 입을 열었다.
“제가 시종인 본분을 잊고 함부로 행동함으로 인해 분란을 일으켰습니다. 비로소 제 경솔한 행동을 깨달게 되었으니 부디 화를 푸시고 노여움을 거두시기 바랍니다.”
아하루와 하렌은 당황해서 카미야를 쳐다보았다.
“카, 카미야”
“카미야군 어찌!”
카미야는 고개를 조용히 흔들더니 아하루에게 고개를 숙였다.
“지금부터 제가 아하루님의 식사 시중을 들겠습니다.”
“하지만 카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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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재밌어요.
카미야 멋지네요. ^^
뒷 내용 기다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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