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에 아하루는 잠시 움찔하더니 삐진 듯 고개를 홱 돌렸다.
“싫어”
“어머나, 제가 그새 싫어지신 거예요?”
“아니 난 네가 남자랑 있는 거 싫다고.”
“그건 불공평한데요? 저만 아하루님에게 바라봐야 한다는 거잖아요.”
“그럴지도 몰라, 그렇지만 난 카미야가 남자든 여자든 어떤 모습으로든 다른 사람과 있는 건 싫어. 카미야는 내가 그걸 받아들이길 원해?”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살포시 아하루를 안았다.
“아니요 저도 아하루님이 지금처럼 이대로 저를 사랑해주신다면 불만 없어요. 다만..”
“다만?”
“어떤 일이 있어도 저를 버리지 않는다고 약속해주세요”
“그건 당연한 거잖아, 비록 내가 아무리 다른 많은 여자들과 잠을 자고 결혼할 지라도 결코 카미야를 떠나지는 않을 거야 왜냐하면 카미야는 내거니깐“
“그렇군요. 당연한 거였네요”
그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전 영원히 아하루님의 것 이예요. 앞으로도 그리고 영원히 제가 어디에 있던지”
아하루가 그런 그녀가 좋은지 카미야의 입술에 입 맞추었다. 그리곤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하겠네? 내거니깐?”
그녀가 웃으며 답했다.
“어쩔 수 없죠. 절 이렇게 아하루님의 것으로 만든 신을 원망할 뿐”
“그건 뭐든지 다해준다는 얘기야?”
그녀는 아하루의 얼굴을 쳐다보며 입에 키스를 하며 말했다.
“저를 어떤 식으로 사용하던지 그건 당신 맘이랍니다. 저는 이미 당신 것이니까요. 제겐 더 이상 어떤 명령도 거부할 힘이 없어요. 그저 늘 아하루님의 사랑만을 바라는 힘없는 노예일 뿐이기에…….”
그녀가 아하루 앞에 무릎 꿇고 그의 발에 입 맞추었다.
“아하루님. 당신이 저를 떠나지 않는다면, 나중에 제가 질려서 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가장 아름다운 미녀들이 당신의 주위에 넘쳐서 제가 더 이상 당신께 아무런 기쁨이 되어드리지 못한다고 해도, 절 버리지 않고 제 곁을 떠나지 않는다면 저는 영원이 아하루님 당신의 것이랍니다.”
아하루는 왠지 찡한 느낌을 받았다. 엎드린 그녀를 마주 끌어안고 쓰다듬었다.
“카미야 내 사랑, 내가 아무리 많은 금은보화와 아무리 많은 미녀가 가득 하더라도 내 한쪽 팔은 언제나 너와 함께 할 거야”
둘은 그대로 끌어안은 채 입 맞추었다.
***
어스름 노을 지는 수도 룬의 마법진 출입국 관리소는 분주했던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정리하느라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관리소의 문이 열리며 한 떼의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그들의 위압적인 태도에 직원들과 일부 경비병들이 그들을 제지 못하고 두려운 듯 쳐다보았다.
“누구십니까? 그리고 무슨 일이십니까?”
제법 강단이 있어 보이는 경비병이 그들을 제지하고 나섰다.
그러자 그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경비병에게 다가왔다. 그리곤 망토 안쪽에 있는 문장을 보여주었다. 검은색 드래곤이 브레스를 내뿜는 모양이 돋을새김으로 부조되어 있었고 문장의 위에는 6이란 숫자가 박혀 있었다.
블랙 드래곤 기사단 제 6대(隊)
문장을 확인한 경비병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주춤 뒤로 물러섰다.
블랙 드래곤 기사단은 황제 직속의 비밀 기사단으로 어둠속에서 제국과 황제에 위협이 되는 모든 적을 비밀리에 처리하는 기사단이다.
유사시 귀족들까지도 즉각 처형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자들이라 일반 평민들은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만으로도 즉결 처형해도 누구도 항변조차 할 수 없다.
“여기 책임자 좀 오라고 해”
“예? 엣! 알겠습니다!”
경비병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어디론가 후다닥 달려 나갔다.
주위의 사람들은 그들을 그저 두려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웅성댔다. 그러나 그들은 주위의 소란과는 무관한 듯 그들 대장의 명령이 있기까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위압적인 자세를 유지했다.
조금 후 뚱뚱한 사내가 아까 달려간 경비병의 인도를 받으며 달려왔다. 급히 달려 온 탓인지 뚱뚱한 사내는 도착하고서도 연신 숨을 헐떡였다.
“헉헉, 전 여기 책임자인 라코테 소장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리면 될까요?”
“도와?”
대장은 차가운 눈으로 흐릿하게 비웃음을 띄었다. 그리곤 코웃음 치며 말했다.
“너희들의 도움 따윈 필요 없다. 우리가 지시하는 대로 따라라”
“넷? 아……. 네!”
뚱뚱한 사내는 사내의 눈과 마주친 것만으로도 두려웠는지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어제 이곳을 통해 빠져나간 승객의 모든 명부를 가져와”
“알겠습니다.”
사내의 지시에 소장은 곧 접수대에 있는 직원을 바라보았다. 소장의 눈길을 받은 직원은 자신의 책상서랍을 열곤 한 무더기의 서류뭉치를 꺼냈다. 그러자 직원이 가져 오기를 기다리는 것조차 기다리지 못한 소장이 직접 접수대로 달려가 서류를 들고 대장에게 왔다.
대장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잠시 서류를 쳐다보더니 뒤에 있는 자신의 대원들에게 짧게 말했다.
“시작해”
대장의 말이 끝나자 기사들은 소장에게서 서류를 빼앗듯 넘겨받곤 서류 안에서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대장님!”
한쪽에서 수정구술로 뭔가를 체크하던 기사가 대장에게 뭔가를 속삭였다. 대장은 기사가 말한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보관실이었다.
“저긴 뭐하는 곳이지?”
소장은 땀을 삐질 흘리며 대답했다.
“저, 저곳은 여행자들이 짐을 잠시 보관하는 곳입니다.”
“그래?”
대장은 그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소장은 사내의 방향이 보관실로 향하자 얼른 사내의 앞을 지나쳐 보관실의 문을 열어주었다. 사내는 소장이 열어준 보관실의 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갔다.
벽면을 빼곡히 차있는 보관함들을 보곤 자신에게 귓속말을 했던 대원에게 눈짓을 보냈다. 대원은 다시 수정구를 들고는 사방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러다 한 순간 수정구에서 빛이 깜빡였다. 대원이 수정구를 깜빡인 방향으로 내밀었다. 수정구의 깜빡임이 점점 빨라졌다.
대원은 수정구를 어루만져 뭔가를 조정하더니 각 보관함의 문에 수정구를 일일이 갖다 대었다.
1176번 보관함에 이르자 수정구는 점멸을 멈추고 환한 빛을 냈다. 대원이 고개를 들어 대장을 바라보았다. 대원과 눈이 맞은 대장은 조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저 보관함의 주인 이름과 여분의 열쇠를 갖고 와”
소장은 사내의 말에 흠칫 놀라더니 이마에 흐른 땀을 닦으며 곁에 있던 직원에게 말했다.
“들었지? 저 보관함이 누구 건지 알아와”
소장의 명을 받은 직원이 후다닥 보관실을 나섰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한 장의 서류를 들고 왔다. 소장은 직원이 들고 온 서류를 받아 공손히 대장에게 건넸다.
거기엔 아하루란 이름이 적혀있었다.
서류에 적힌 이름을 힐끔 살핀 대장은 뒤 따라 왔던 또 다른 대원에게 그 서류를 건넸다.
“이 녀석 걸 찾아오라고 해.”
서류를 건네받은 대원이 곧장 밖으로 나갔다.
|
댓글 없음:
댓글 쓰기